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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커버이미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김애경 옮김 
  • 출판사청목(청목사) 
  • 출판일2011-02-09 
  • 등록일2015-10-12 
  • 파일포맷 epub 
  • 파일크기707 K  
  • 지원기기 PC PHONE TABLET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 태블릿, PC

책소개

독일이 낳은 위대한 문호이자 정치가인 고전파의 대표적 인물이다.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으며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16세에 라이프찌히 대학 법학부에 입학했다. 문학자 헤르더와의 만남으로 그리스·로마이 고전, 세익스피어 등을 접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그 일생의 결정적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질풍노도 시대의 대표작으로 당시 젊은이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저자소개

1749년 8월 28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 태어났다. 아들의 교육에 헌신적이던 아버지 덕분에 어려서부터 그리스어, 라틴어, 히브리어, 불어, 영어, 이탈리아어 등을 배웠고, 그리스 로마의 고전 문학과 성경 등을 읽었다. 1757년, 어린 나이에 신년시를 써서 조부모에게 선물할 정도로 문학적 재능을 타고났다.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으나 문학과 미술에 더 몰두하였고, 1767년에 첫 희곡 <연인의 변덕>을 썼다. 1770년 슈트라스부르크 대학 재학 당시 헤르더를 통해 호머, 오시안, 그리고 특히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에 눈을 떴으며, ‘질풍노도 운동’의 계기를 마련했다. 1772년 베츨라의 법률 사무소에서 견습 생활을 하던 중 이미 약혼자가 있는 샤를로테 부프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이때의 체험을 소설로 옮긴 것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이 소설은 당시 유럽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주인공 베르테르의 옷차림이나, 절망적인 사랑으로 인한 자살이 유행하기까지 했다. 1775년 카알 아우구스트 공의 초청으로 바이마르로 이주하여 그곳을 문화의 중심지로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행정가로 국정에 참여하고 교육, 재정, 건설, 군사, 산림 등 온갖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었고, 식물학, 해부학, 광물학, 지질학, 색채론 등 인간을 설명하는 모든 분야에 관심을 기울였다. 1786년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고전주의 문학관을 확립했고, 1794년 독일 문학계의 또 다른 거장 쉴러를 만나 그와 함께 독일 바이마르 고전주의를 꽃피웠다. 1796년에 쓴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는 대표적인 교양소설이다. 1797년에는 쉴러의 <시신연감(詩神年鑑)>에 공동작의 단시(短詩) <쿠세니엔(손님에게 드리는 선물)> 414편을 발표하여 문단을 풍자하였다. 또한 문단의 물의(物議)를 외면한 채 이야기체로 쓴 시(詩)를 경작(競作)하여, 1797년은 ‘발라드의 해’라고 일컬어진다. 1805년 쉴러의 죽음과 더불어 만년기(晩年期)를 맞이하였다. 만년의 괴테의 문학활동 중 가장 특징적인 것은 ‘세계문학’의 제창(提唱)과 그 실천이었다. 괴테는 그 무렵에 이미 유럽 문학의 최고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 위치에서 프랑스·이탈리아·영국, 나아가서 신대륙인 미국의 문학을 조망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각 국민문학의 교류를 꾀하고, 젊은 세대를 위한 세계문학적 시야를 넓혔던 것이다. 쉴러의 죽음으로 “존재의 절반을 잃은 것 같다.”라고 말할 만큼 큰 충격에 빠지지만 이후에도 창작 활동과 연구는 끊임이 없었고, <색채론>(1810),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1821), <이탈리아 기행>(1829) 등을 완성했다. 스물네 살에 구상하기 시작하여 생을 마감하기 바로 한 해 전에 완성한 역작 <파우스트>를 마지막으로 1832년 세상을 떠났다.

목차

http://ebook.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821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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