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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선택 01 이순신을 위하여 (커버이미지)
역사의 선택 01 이순신을 위하여
  •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단재 신채호 지음 
  • 출판사다산북스 
  • 출판일2014-06-17 
  • 등록일2015-10-12 
  • 파일포맷 epub 
  • 파일크기14 M  
  • 지원기기 PC PHONE TABLET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 태블릿, PC

책소개

도적의 기세는 바다에 가득하고
군사와 백성은 기운과 마음이
흙같이 무너졌으니,
영웅의 눈에 눈물이 스스로 흐르는도다.
7년의 전쟁, 그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단 한 명의 영웅!

역사는 왜 이순신을 선택했을까
《이순신을 위하여》는 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 1880-1936) 선생이 1908년에 쓴 역사 전기물이다. 신채호 선생은 장지연이 사장으로 있던 ‘황성신문’ 논설기자로 언론인 활동을 하는 한편, 우리 민족이 처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여러 편의 위인전을 쓰게 된다. 《을지문덕》(1908년), 《동국 거걸(巨傑) 최도통(崔都統)》(1909~1910년) 등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연작들을 발표한다. 외적을 물리치고 국가의 위기를 구하는 민족 영웅이 당시대로서는 무엇보다 중요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순신의 《난중일기(亂中日記)》를 기초로 작성된 《이순신을 위하여》는 심화되는 일본의 조선 침략, 친일파의 집권, 서구열강의 무관심 내지는 일본과의 밀약, 자주독립과 국권확립의 불안정 등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당시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다. 책의 마지막에 보이는 신사씨(新史氏)의 논평이 보이는데, 이는 단재 신채호 자신이며, 그러한 논평 방식은 사마천의 사기열전 방식과 유사하다. 동양 전통 교육을 받은 영향으로 보인다.

저자소개

지금의 대전광역시 중구 어남동에서 신광식(申光植)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호는 일편단생(一片丹生), 단생(丹生), 단재(丹齋), 금협산인(錦頰山人), 무애생(無涯生) 등이다. 충북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그는 조부에게 한학을 배웠는데, 13세에 사서삼경을 모두 읽어 신동으로 불렸고, 19세에 성균관에 입학해서 1905년 성균관 박사가 된다. 같은 해 장지연(張志淵)이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을 쓰고 투옥되자, 그의 뒤를 이어서 논설위원으로 활동한다. 이듬해 ≪대한매일신보≫의 주필이 되었고, ≪이태리 건국 삼걸전≫을 광학서포에서 발행한다. 1907년 신채호는 비밀결사 단체 신민회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국채보상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앞장선다. 1908년 신채호는 여성 계몽 잡지 ≪가정잡지≫의 발행인이 됐고, 같은 해 ≪대한매일신보≫에 5월부터 8월까지 <수군 제일 위인 이순신전>을 연재한다. 5월에는 ≪을지문덕≫을 광학서포에서 발행했고 다음해 ≪동국거걸 최도통전≫을 출간했다. 1910년 한일합방 후, 신채호는 안창호(安昌浩), 이갑(李甲) 등과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 독립사상의 전파를 위해 ≪해조신문≫을 발간한다. 1914년에 ≪조선사≫의 저술을 시작한 신채호는 만주를 여행하면서 광개토왕 왕릉 등 고구려 고적을 답사한다. 다음해 북경 도서관에서 ≪조선상고사≫의 집필을 위한 연구 자료를 수집한다. 또 박은식(朴殷植), 문일평(文一平) 등과 박달학원을 설립한다. 1919년 신채호는 임시정부 전원위원회 위원장으로, 비밀결사 대동청년단 단장으로 추대된다. 같은 해 ≪신대한≫의 주필로 독립운동에 많은 영향을 주는 글을 썼고 대한 독립청년단 단장, 신대한동맹단의 부단주가 된다. 다음해, 보합단(普合團)의 내임장으로 추대된 그는 독립군 자금을 모집한다. 1921년 북경에서 김정묵(金正默), 박봉래(朴鳳來)등과 통일책진회(統一策進會)를 만들어 <통일책진회 발기 취지서>를 발표한다. 다음해 북경에서 조선 역사를 연구해 ≪조선상고사≫, ≪조선상고문화사≫, ≪조선사연구초≫를 저술한다. 그리고 1923년 의열단(義烈團)의 요청으로 <조선혁명선언>을 만들었고, 국민대표자회의에 참석해 임시정부의 창조파로 활약한다. 다음해 관음사(觀音寺)에서 역사 연구에 몰두한다. 1925년에는 1월부터 10월까지 ≪동아일보≫에 ≪조선사연구초≫를 연재하면서, 무정부주의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미발표 작품인 <전후 삼한고>를 쓴다. 1928년 대만의 무정부주의 비밀결사 사건에 연루된 신채호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0년 형을 받아 뤼순 감옥에서 복역한다. 다음해 ≪조선사연구초≫가 동지들에 의해 서울에서 출판된다. 1931년에 그는 ≪조선일보≫에 6월부터 10월까지 <조선사>를 연재했고, 10월부터 12월까지 <조선상고문화사>를 연재한다. 1936년 2월, 신채호의 나이 57세, 뤼순 감옥에서 뇌일혈로 의식을 잃은 후,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타국 땅에서 옥사한다. 1945년에는 신채호학사가 설립되었고, 다음해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조선사>의 서문을 ≪조선사론≫으로 표제하여 광한서림에서 출판한다. 1948년 ≪조선상고사≫를 종로서원에서 발행했고, 1955년 단재유고출판회에서 ≪을지문덕≫을 순 한글로 번역 출판한다. 1962년 신채호에게 대한민국 건국 공로훈장이 수여되었다. 그리고 2007년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에서 ≪단재 신채호 전집≫이 발행되었다.

목차

제1장 서론
제2장 이순신이 어렸을 때와 소시적의 일
제3장 이순신의 출신(出身)과 그 후에 곤란
제4장 오랑캐를 막던 조그만 싸움과 조정에서 인재를 구함
제5장 이순신이 전쟁을 준비
제6장 부산 바다로 구원하려 간 일
제7장 이순신이 옥포에서 첫번 싸움
제8장 이순신의 제2전(당포(唐浦))
제9장 이순신의 제3전(견내량(見乃梁))
제10장 이순신의 제4전(부산(釜山))
제11장 제5전 후에 이순신
제12장 이순신의 구나(拘拿)
제13장 이순신의 옥에 들어갔다가 나오던 동안 집과 나라의 비참한 운수
제14장 이순신의 통제사 재임과 명량(鳴梁)에서 대승첩
제15장 왜적의 말로
제16장 진린(陣璘)의 중도의 변함과 노량(露梁)의 대전(大戰)
제17장 이순신의 반구와 그 유한
제18장 이순신의 제장(諸將)과 그 유적과 그 기담(奇談)
제19장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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