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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시선집 (커버이미지)
백석 시선집
  •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백석 
  • 출판사인콘텐츠 
  • 출판일2012-11-22 
  • 등록일2015-10-12 
  • 파일포맷 epub 
  • 파일크기30 M  
  • 지원기기 PC PHONE TABLET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 태블릿, PC

책소개

▣ 책 소개


2012년은 백석 탄생 100주년이다. 1935년 8월 〈정주성〉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이름을 올렸고, 1936년 시집 《사슴》을 출간했다. 그 뒤로도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여 〈적막강산〉(1947),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1948) 등 명시들을 한국 독자에게 선사했다.
그가 월북하기 전까지 우리에게 남긴 시는 110여 편에 이른다. 젊은 나이에 세련되면서도 향토미를 잃지 않은 균형 잡힌 시 세계를 선보였지만, 아쉽게도 이데올로기 시대의 장벽에 가로막혀 일찍 시재를 접어야 했다. 북한에서 제대로 된 시 창작에 몰입하지 못하면서 우리는 위대한 시인의 아름다운 작품을 더 읽어볼 기회를 잃었다. 더구나 그는 ‘월북 작가’라는 멍에 탓에 오래도록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하지만 주머니의 송곳이 주머니를 뚫고 나오기 마련이듯, 그의 작품들은 그 자체의 뛰어난 예술성 덕분에 우리의 망각을 뚫고 나와 되살아났다. 1988년 북한문인 해금 조치 후에 그를 주제로 한 석·박사 논문만 해도 600편을 훌쩍 넘기고 있다. 또한 그는 ‘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예를 들어 과거에 김기림 시인은 백석 시집 《사슴》을 두고 “시단에 한 개의 포탄을 던지는 것”이라고 극찬했고, 신석정 시인은 ‘눈 속에 《사슴》을 보내주신 백석 선생께 드리는 한 폭의 수선화’라는 부제를 달고 헌시 〈수선화〉를 발표했다. 또한 윤동주가 그의 시집을 필사하며 소중하게 읽었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요즘 활발히 활동하는 시인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안도현 시인은 “내 시의 사부는 백석”이라고 표현했고 장석남, 문태준 시인도 백석을 중요하게 거론하고 있다.
서정시인이자 모더니스트로서 백석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당대에 서정시인으로서 명성을 드높였고 21세기에도 그의 감각을 사랑하는 문인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일반독자에게도 백석의 감수성은 설득력이 있다.
인제 《백석 시선집》을 통해 백석의 초창기 시어와 그 뒤의 활동상을 쉽게 파악하면서, 그만의 천부적인 감성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흔히 백석의 시를 고를 때는 《사슴》(1936)과 《사슴》 이후로 나누어 본다. 백석은 시집 《사슴》을 출간한 뒤 여러 지면에 발표한 작품을 묶지는 않았다. 즉 《사슴》은 시인 백석의 중요한 분기점으로 볼 수 있다.
이번에 출간하는 《백석 시선집》의 1부에서는 《사슴》 전편을 실었고, 2부에서는 《사슴》 이외 작품들을 선별해 실었다.
《사슴》에 실린 백석의 초기시들은 고향의 정취가 가득한 수준 높은 명시들이다. 〈모닥불〉, 〈가즈랑집〉의 향토적 서정성과 〈오리 망아지 토끼〉 등에 보이는 해학적 향토성은 읽는 이에게 흐뭇한 미소를 흘리게 해준다. 또한 《사슴》 이후 시에서 엿보이는 시인의 성숙함을 읽어내는 즐거움도 있을 것이다. 기생 자야와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유명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도 《사슴》 이후에 발표된 작품이다.
특히 독자에게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아름다운 연애시로 깊이 각인되어 있다. 그 작품은 한국어로 쓰인 수많은 연애시 중에서도 단연 몇 손가락에 손꼽을 만하다. 10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그 시의 감성이 현대 독자들에게 낡지 않은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다. 그의 감각이 시대를 초월한 보편성을 얻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바로 이러한 특성이 백석은 특별하게 한다. 일제 강점기 시인으로 활동하면서 향토색 짙은 평안북도 방언을 시어로 주로 사용했음에도 그의 시는 현대적인 면모도 띤다. 그는 그 어떤 동인이나 유파에 속하지 않은 채 그만의 어법으로 한국어의 진경을 펼쳐놓고 있다. 그것이 시에 자연스럽게 녹아있어 읽는 이들을 감탄케 한다. 개인적인 취향과 현대인의 가치를 잘 드러내면서도 사람과 풍경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탁월함 덕분에 그는 한국 현대시사에서 없어서는 안될 인물로 점점 비중이 커지고 있다. 지금도 한국 현대시사에서 백석에 견줄 만한 인물을 꼽기가 만만치 않다.
그가 북한에서 생활할 때 그전처럼 창작에 몰두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아쉽다. 대신 그가 자신의 문체를 살려 번역한 러시아나 중국 문학 작품들이 남아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에 관한 연구는 미발표작들과 번역서까지 아울러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이번에 출간한 《백석 시선집》은 되살아난 그가 어디까지 달라진 위상으로 우리에게 서 있을지 판단하게 해줄 원 텍스트이다. 찬찬히 읽다 보면 새로운 백석이 보일 것이다.


▣ 작가 소개

백석(白石 또는 白奭, 1912년 7월 1일 ~ 1996년 1월경)은 북조선의 시인이다. 본명은 백기행(白夔行)이다.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1936년 시집 <사슴>으로 문단에 데뷔하였다. 이후 50여 편의 작품을 더 발표했으나 시집은 더 이상 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작품에 특유의 평안도 사투리를 구사하기를 즐겼으나 분단 이후 북조선의 방언 억제 정책 탓에 많은 활동을 하지 못했다. 백석은 한국과 만주 일대를 유랑하며 많은 작품을 지었다. 그의 시에는 한국 민족의 공동체적 친근성에 기반을 두고 고향을 밀도 있게 그리고 있다. 그는 이를 토대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한국 민족의 삶을 노래했다. 그가 남긴 여러 편의 기행시에서도 그의 고향 인식은 일제 강점기를 살아가는 한국 민중의 삶을 형상화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남한에서는 북조선 시인이라는 이유로 백석 시의 출판이 금지되었으나 1987년 처음으로 그의 작품이 소개된 이후 많은 재평가를 받고 있다. 특유의 평북 사투리와 사라져가는 옛것을 소재로 삼아 특유의 향토주의 정서를 드러내면서도 뚜렷한 자기 관조로 한국 모더니즘의 또 다른 측면을 개척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한국에서는 백석이 1963년쯤 협동농장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최근 유족들은 1996년까지 그가 생존해 있었다고 말했다.

저자소개

1912년 7월 1일(음력 추정) 평북 정주군 갈산면 익성동 1013호에서 부친 백시박(白時璞)과 모친 이봉우(李鳳宇)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난 시인 백석(白石)의 외모는 한눈에도 두드러진다.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사진을 봐도 그의 모습은 매우 모던하다. 서구적 외모에 곱슬곱슬한 고수머리. 빛바랜 흑백사진을 보면 그의 머리 모양은 참 특이하다. 1930년대에 그런 머리를 할 수 있는 감각이란 얼마나 현대적인가? 옛사람이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는 시쳇말로 외모와 문학을 새롭게 디자인한 모던 보이이자 우리말의 감각을 최대치로 보여 준 시인이다. 본명은 기행(夔行)으로 알려져 있지만 기연(基衍)으로도 불렸다. 필명은 백석(白石, 白奭)인데 주로 백석(白石)으로 활동했다. 1918년(7세), 백석은 오산소학교에 입학했다. 동문들의 회고에 따르면 재학 시절 오산학교의 선배 시인인 김소월을 매우 선망했고, 문학과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1929년 오산 고등보통학교(오산학교의 바뀐 이름)를 졸업하고 1930년 ≪조선일보≫의 작품 공모에 단편 소설 <그 모(母)와 아들>을 응모, 당선되어 소설가로서 문단에 데뷔한다. 이해 3월에 조선일보사 후원 장학생 선발에 뽑혀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靑山)학원 영어사범과에 입학해 영문학을 전공한다. 1934년 아오야마학원을 졸업한 뒤 귀국해 조선일보사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경성 생활을 시작한다. 출판부 일을 보면서 계열잡지인 ≪여성(女性)≫의 편집을 맡았고 ≪조선일보≫ 지면에 외국 문학 작품과 논문을 번역해서 싣기도 했다. 1935년 8월 30일 시 <정주성(定州城)>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면서 시인으로서의 창작 활동을 시작하는 한편 잡지 ≪조광(朝光)≫ 편집부에서 일한다. 1936년 1월 20일 시집 ≪사슴≫을 선광인쇄주식회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발간한다. 1월29일 서울 태서관(太西館)에서 열린 출판기념회 발기인은 안석영, 함대훈, 홍기문, 김규택, 이원조, 이갑섭, 문동표, 김해균, 신현중, 허준, 김기림 등 11인이었다. 1936년 4월, 조선일보사를 사직하고 함경남도 함흥 영생고보의 영어 교사로 옮겨 간다. 1940년 1월 백석은 친구 허준과 정현웅에게 “만주라는 넓은 벌판에 가 시 백 편을 가지고 오리라”라는 다짐을 하고 만주로 향한다. 1940년도에 들어와 백석은 한국 현대시 최고의 명편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서의 자리를 굳힌다. 시적 반경도 역사적·지리적·정신적으로 대단히 깊고 넓어지기 시작한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귀국해 신의주에서 잠시 거주하다 고향 정주로 돌아가 남의 집 과수원에서 일한다. 1946년 고당 조만식 선생의 요청으로 평양으로 나와 고당 선생의 통역 비서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8년 김일성대학에서 영어와 러시아어를 강의했다고 전해진다. 그해 10월 ≪학풍≫ 창간호에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을 발표한 것을 끝으로 남한 정부가 월북 문인 해금 조치를 취한 1988년까지 그의 모든 문학적 성과와 활동이 완전히 매몰되고 만다. 한국전쟁 직후 백석은 평양 동대원 구역에 거주하면서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외국 문학 번역 창작실’에 소속되어 러시아 소설과 시 등의 번역과 창작에 몰두한다. 1962년 10월 북한의 문화계 전반에 내려진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과 연관되어 일체의 창작 활동을 중단한다. 1996년 1월 7일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목차


▣ 목차

작가소개
백석의 시 세계와 《백석 시선집》

1부 시집 <사슴>

얼룩소새끼의영각

모닥불
가즈랑집
여우난골족
고방
고야
오리 망아지 토끼


돌더구의물

초동일(初冬日)
하답(夏沓)
주막 (酒幕)
적경(寂境)
미명계(未明界)
성외(城外)
추일산조(秋日山朝)
광원(曠原)
흰 밤

노루

청시(靑枾)
산(山) 비
쓸쓸한 길
자류(柘榴)
머루밤
여승(女僧)
수라(修羅)

노루


국수당넘어

절간의 소 이야기
통영(統營)
오금덩이라는 곳
시기(枾崎)의 바다
정주성 ( 定州城 )
창의문외(彰義門外)
정문촌(旌門村)
여우난골
삼방(三防)

2부 시집 <사슴> 외 편

통영(統營)
오리
연자간
탕약(湯藥)
이두국주가도(伊豆國湊街道)
창원도(昌原道)
통영(統營)
고성가도(固城街道)
삼천포(三天浦)
바다
추야일경(秋夜一景)
산숙(山宿)
향악(鄕樂)
야반(夜半)
백화(白樺)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석양(夕陽)
절망
외갓집

내가 생각하는 것은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삼호(三湖)
물계리(物界里)
대산동(大山洞)
남향(南鄕)
야우소회(夜雨小懷)
꼴두기
가무래기의 악(樂)
멧새소리
박각시 오는 저녁
넘언집 범 같은 노큰마니
동뇨부(童尿賦)
안동(安東)
함남도안(咸南道安)
목구(木具)
수박씨, 호박씨
북방에서 _ 정현웅에게
허 준( 許 俊 )
‘호박꽃 초롱’ 서시
귀농(歸農)
국 수
흰 바람벽이 있어
촌에서 온 아이
조당에서
두보(杜甫)나 이백(李白) 같이
산(山)
적막강산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칠월백중
남신의주(南新義州) 유동(柳洞) 박시봉방(朴時逢方)
저자소개_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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